전례

카니발과 사순시기의 시작 재의 수요일

Joannes 2024. 3. 9. 12:07

카니발과 사순시기의 시작 재의 수요일

[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카니발과 사순시기의 시작 재의 수요일 : 태양과 달의 주기를 교차하며 기념하는

창조와 구원의 시간, 풍요로움을 준비하는 봄의 일깨움 안에 갈망의 기쁨으로

부활을 향하는 보속의 시간

 

재의 수요일, 사순시기가 시작됐다.

전례력 안에서 천문학, 물리학적 날짜보다 성서적 전통과 신학적 의미가 더 강조되는

대표 축일이 부활 대축일이다.

부활절에 따라 역시 성서적 전통에 따라, 그리고 예수님의 자취에 따라

40일의 정화와 준비 기간인 사순시기가 정해지고 부활 뒤에 주님 승천과 성령 강림이

정해진다.

오늘날 태양력으로 고정할 수 없는 날짜들이다.

 

태양력과 태음력, 달력을 복잡하게 계산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사를 담고 있는 전례력의 축일을 보노라면, 현재는 잃어버린 자연과의 관계, 천체와의 관계가 그 흐름에 깊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 사 안에서 통합생태학적 시각으로 하느님 창조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새로이 더 크게 생각하고 돌아보게 된다.

 

주님 부활에 대해 네 복음사가가 공통적으로 전하는 바와 같이 여인들과 제자들이 파스카 축일과 관련해서 안식일 다음날 빈 무덤을 발견했기 때문에 초대교회부터 유대인의 파스카 축제일과 연결해서 초봄(Nisan)의 첫 보름(3월 중순)에 맞춰서 주님 부활을 기념했는데,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유대인의 축제와 구분하도록 초봄 첫 보름 다음 일요일로 결정했다.

마침 니케아 공의회 때 3월 보름이 21일이었는데, 1582년 그레고리오 교황이 그레고리오 달력을 확정하면서 중세 초기에 이미 통용되던 대로 봄의 시작을 춘분, 321일로 확정하고 322일부터 425일 사이로 35개의 부활절 날짜가 정해졌다.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때에 절대로 일식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름달 이후로 정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구약의 전통처럼,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 준비처럼 40일 동안의 정화와 보속 기간을 정하는데, 일요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축일이므로 제외되어 부활절 46일 전, 수요일이 사순시기의 시작이 되었다.

 

재의 수요일은 말 그대로 참회와 보속의 표시인 재를 받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재의 수요일에 사제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며 신자들의 머리에 재로 십자가 표시한다.

무거운 죄를 진 사람들은 참회 복을 입고 재를 뿌려 공개적으로 참회자의 위치에 서게 했던 초기 교회의 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푸른 목요일(녹색의 목요일)이라 하는 성 목요일에 다시 교회공동체에 받아들여진다.

옛 그리스도교 속죄 형태가 점차 지배적 참회의 형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재의 수요일 외에는 고백성사의 형태가 더 빈번히 교회의 참회와 보속행위로 대치되었다.

 

사순시기의 시작, 재의 수요일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카니발이다.

다섯 번째 계절이라고도 하는 카니발 시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마르티노 성인의 축제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겠지만, 일반적으로, 특히 중부 라인 이북 지역에서는 카니발 축제가 재의 수요일 전 목요일 여인들의 카니발로 시작해서 재의 수요일에 끝난다.

그래서 교회 전례력의 비공식적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카니발은 농사를 준비하고, 배가 뜨기 시작하는 초봄에 그리스도교 이전부터 있었던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 생산력을 기원하는 축제엄격한 금욕과 절제된 사순절 40일 이전에 자유롭고 흥겹게, 40일 동안 할 수 없는 모든 것들, 얽매이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며 충전하는 시간으로 연결한 것이다.

남쪽 지역에서는 3월 초봄이 아니라 이미 1월 삼왕내조와 연결해서 이런 축제 기간들이 있었는데, 중세 후기로 갈수록 사순절과 대조되며 연결되는 기간으로 정해졌다.

 

성전에서 재는 세속의 욕망과 대조된 입장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카니발에서는 당연히 구원된 사람들을 경축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들, 하느님을 모르는 멍텅구리들로 축제를 지낸다.

가면에 악덕을 표현하거나 무대에서의 카니발 만담에서 인간적인 약점, 악함을 핵심으로 말한다.

이런 세상적 풍요를 만끽하고 재의 수요일에 신앙 안에서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시간을 시작하며 자신의 헛됨을 마주 대하도록 한다.

인간적 욕망과 행위의 헛됨이다. 반면 사순절 기간 동안 절제와 희생 안에서 부활을 향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행한 것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며 영원한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19세기 이후에는 카니발이 프랑스나 프로이센과 같은 당시의 절대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풍자의 성격을 가지고 지역별 애국심을 나타내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제 이렇게 자유를 맘껏 향유하며 다양한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의견과 사회, 정치 비판을 나누는 시간을 지나 새로운 삶의 부활을 갈망하는 시간에 들어간다.

무엇을 참회하고 어떻게 보속하며 부활의 기쁨을 기다릴 것인가? 어느 곳에서는 탄소 절약을 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고통 받는 지역에 희생을 보내기도 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작은 움직임으로 연대하며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기도 한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는 단식이란 "우리의 작은 약함을 이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하고자 하는 욕구의 힘을 부수는 데에 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로버트 라이히트의 말이 더 연결되는 것 같다.

세상을 변화하고픈 열망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이것을 잘 성찰하고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지난 시간 사순절을 열었던 기도로 다시금 이 시간을 시작한다.

 

주님, 사순시기의 시작에 저희 이마에 표시된 재의 십자가는 한편으로는 저희의 헛된 삶을, 또 한편으로는 십자가 표징으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 당신께 머무는 삶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의 작은 습관 하나도, 나의 작은 욕심, 작은 자존심 하나도 죽기가 너무나 어렵지만, 그 죽음이 부활을 향한 과정이라는 깨우침만으로도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사십 일, 부활을 향한 이 보속의 시간에 저희가 당신께 더더욱 가깝게 다가가는 길을 찾게 하소서.그리하여 부활절이 진정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축제가 되게 하소서. 아멘.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유미 | editor@catholicnews.co.kr

 

 

사순''이냐? 사순'시기'?

 

[교회 상식 속 풀이 - 박종인]

 

오늘은, 전례주년과 관련한 낱말들을 좀 더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시기'가 검토해 볼 낱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 두 단어는 혼용되고 있습니다.

이 둘은 사전적인 뜻으로 보면 비슷한 말처럼 취급되지만 그 둘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예를 통해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범위에서 두 단어의 차이를 검토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통해 용어 사용에 관한 일정한 기준도 설정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자사전을 통해 "()"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시기"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순절, 부활절, 대림절, 성탄절....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면 ""이라고 쓰여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절이 아닌 듯이

보입니다.

사순절은 어느 하루를 지시하는 것이 아닌 반면, 부활절은 부활주일 당일, 즉 사건이 벌어진 어떤 하루를 특정하고 있습니다.

대림절도 사순절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해당하는 기간이 아니지만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을 의미합니다.

 

사용례를 좀 더 확장해서, 단오절, 중추절 등과 같이 명절에 붙여진 ""이나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제헌절 등의 기념일들을 나열해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3대 축제인 과월절(Pascha), 오순절(Pentecoste), 초막절(Sukkot)에도 ""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예들을

통해 볼 때 절은 일반적으로 축제나 명절에 사용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축제의 지속시간은 보통 하루, 길게는 일주일(초막절의 경우)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 사용례와 지속 시기를 고려해 볼 때, 사순절과 대림절은 오히려 "시기"라는 말로 바꾸어 사순시기, 대림시기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일주일보다 더 길게 지속되는 성탄시기, 연중시기, 부활시기처럼 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러해 온 것처럼 계속, 사순절, 대림절이라 부른다고 해서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사전적 의미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이나 사순시기, 대림절이나 대림시기가 계속 혼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사순시기 라는 말에 앞서 오히려 사순절이라는 단어가 먼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례학자 조학균 신부에 따르면, 사순절과 사순시기의 용어는 1937<가톨릭 조선>에서 언급한 "봉재(封齊)"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파악되지 않는 봉재의 뜻을 풀어 보자면, 생활을 잘 단속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데 힘쓰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봉재라는 표현은 1880년 한불자전에서 사순절과 사순재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1963년 이후 봉재는 사순절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보다 몇 년 앞서서, 1960<가톨릭 청년>에서는 사순절과 봉재라는 단어를 혼합 사용했고, 1963년에도 <경향>에 실린 정진석 신부(후에 추기경)의 사순절 특강에도 앞의 두 용어가 혼용되었습니다.

 

이후 주교회의에서 발간된 "미사통상문"에서 '사순절 감사송'이라고 표기되었던 것이, 1992년판에서는 '사순 감사송'으로, 96년판에서는 '사순시기 감사송'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사통상문과는 달리 "미사경본 총 지침서"에는 1991년판까지 사순절로 사용하고 있고, 2007년판에서 사순시기로 정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1960년부터 1980년 사이에서 '사순시기'라는 용어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1990년 이후 사순절과 사순시기가 혼용되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사순시기'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제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고 하겠습니다. (조학균, "사순절에서 사순시기로의 변천 안에서의 혼란" 참조)

 

'''시기'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혼용되고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사용해 온 것이고, 혼용해서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사전이나 한글맞춤법통일안 등을 통해 두 단어 사이의 구분이 좀 더 명확해진다면 그때 가서 전례용어도 정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속 풀이 독자 분들도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교회 용어들 중에서 개선해 봄직 하다거나 논의해 볼 만한 것들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함께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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