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이런 미사를 만들어 봐요

Joannes 2015. 3. 23. 20:19

[성가 이야기] 우리 이런 미사를 만들어 봐요 (1)

 

김종헌(발다살)|신부, 한티순교성지 전담, 가톨릭음악원 원장



이번 호부터는
현행 미사전례와 관련한 성가(음악)에 대하여 글을 쓰고자 합니다.

 

미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전례적이고 음악적인 의미를 잘 살펴보고,

우리들 미사에서 실현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감동을 받을 수 있고

은혜로운 미사전례 거행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사 중에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린다고 미사전례가 사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로 하여금 미사 전례 각 부분의 전례적인 의미를 잘 알게 하고,

그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미사를 주례하는 신부님들이나 전례분과위원들과 전례에 관계하는

모든 신자들이 미사전례 각 부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숙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환호송은 평일미사 때에도 반드시 노래하여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미사전례에서는

우리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우스개로 당시의 신자들은 돈 내고(봉헌), 하나 얻어먹고(영성체),

그리고 집에 가면 끝난다고 생각했답니다.

 

주일미사의 의무를 채우기에 급급한 느낌이었죠.

기도란 기도는 모두 주례 신부가 바치셨고,

성가란 성가는 모두 성가대만 불렀기에 신자들은 할 일이 없었습니다.

 

비록 1955년부터

신자들도 미사 때에 자국어로 된 노래 몇 곡을 부를 수 있도록

교회가 허락하였지만 그것도 입당 때, 봉헌 때, 영성체 때,

그리고 파견 때에 부르는 성가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위에서 소개한 성가 네 가지는

전례기도문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도 아니고,

행렬을 수반하는 노래들이기에

미사 때에 꼭 필요한 성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들 성가는 침묵이나 성가대만의 합창 혹은

악기 연주로 대신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의 찬미가(찬송가)를 노래하도록 교회가 허락한 것은

당시의 신자들이 미사 때에 청중으로만 혹은 관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을

안타깝게 느낀 교회의 배려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장 먼저 새로운 미사전례를 개정하였습니다.

 

 

새로운 미사전례는 신자들로 하여금 미사 때에 더욱 적극적으로, 의식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미사 중의 모든 성가는 미사전례의 주체인 신자들에게 되돌아 왔습니다.

자비송과 대영광송, 화답송과 복음환호송, 성찬전례의 환호송들, 주님의 기도,

마침 영광송과 아멘, 하느님의 어린양 등 모든 미사전례문은

미사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이 주체가 되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미사전례의 여러 성가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일에라도  신자들이 우선적으로 노래로 불러야하는 기도문은

바로 ‘환호송(Acclamation)’입니다.

어떻게 보면 옛날 미사에서는 입당, 봉헌, 영성체, 그리고 파견성가를

신자들이 가장 중요한 성가로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이 환호송이 중요합니다.

 

 

환호송을 노래로 하면  미사전례가 좀 더 화려하고 장엄하게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환호송’이라는 기도문 자체가 반드시 노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환호송’에는 복음환호송(알렐루야), 감사환호송(거룩하시도다),

기념환호송(신앙의 신비여), 그리고 마지막 영광송과 아멘(주님의 기도 직전)

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환호송들은 반드시,[

리고 노래할 신자들이 있다면 평일에도 노래로 불러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복음환호송’인 알렐루야의 경우, ‘노래로 하지 않을 경우,

사제는 그냥 조용히 독서대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합니다.’

(미국 전례위원회 문헌)

 

오시는 주님의 말씀을 즐겁게 반기는 신자들의 기쁨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하지 그냥 말로 읽어서는 큰 의미도 없으며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는 교회의 전례정신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네 가지 환호송은 각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표현은 낭송이 아니라 반드시 노래로 불리어져야 합니다.

현재 우리 대구대교구의 많은 본당에서 ‘환호송’의 중요성과

의미를 인식하고 노래로 부르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환호송을 노래로 하지 않는 본당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노래로 부르면 좋겠습니다.

 

(2) 환호송을 노래하는 법


우리가 기쁠 때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쁠 때

다소 흥분하게 되어 말이 빨라지고 소리는 커지고 높아지지 않을까요?

이런 표현이 미사 때에 환호송을 노래할 때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환호송은 기쁨을 나타내는 외침이기에 음정이 다소 높은 곡이 좋으며,

좀 빠르게 노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함께 환호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이 쉽게 노래할 수 있는 쉬운 곡이어야 합니다.


지금 본당에서 부르는 많은 환호송들이 이런 전례적 기준에 알맞게

사용되고 있는지 선곡하는 분이나 성가를 이끌고 있는

성가대 담당자(지휘자, 반주자, 성가대원)는 반드시 살펴보도록 합시다. 

                                                                                                                                                        

 

(3) 환호송만큼은 같은 곡으로 통일하여 본당의 모든 미사에 사용하자.

유독 한국교회만 각 연령대를 위한 미사가 따로 존재하고 성가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미사와 어린이 성가집, 중고등학교 주일학생 미사와 성가집,   

청년미사와 청년성가집 그리고 일반 성인미사와 ‘가톨릭성가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노인들은 ‘노인미사와 노인성가집’을 기다려야 할 판입니다.

 

한국교회의 특성상 이렇게 연령대에 따른 미사를 따로 거행하고

그 미사 중에 다른 성가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환호송’만큼은 본당에서 거행하는 모든 미사 때에

똑같은 곡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어느 본당에서 매 미사마다 환호송을 달리 사용한다면,

연령에 구별없이 본당의 모든 신자들이 다 함께 모여 경축하는

미사 때 (파스카 성야, 성탄 밤미사 그리고 본당 설립기념일 등)에

환호송을 몰라 입을 다물고 있는 신자들도 생길 수 있습니다.

 

본당의 모든 신자들이 함께 경축하고 기쁨의 환호를 바칠 때

그 환호송을 모르기 때문에

함께 부르지 못하는 신자들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초등부 학생도, 중고등학생도, 젊은이도, 어른들도

모두 같은 환호송을 크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계층의 구성원들도 제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외되는 신자는 자기 자신이 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이질감을 느끼는 신자가 있다면

본당 생활에 흥미를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성가(음악)는 신자 간의 일치를 도와주고 하나의 찬미공동체를

만들어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환호송으로 말미암아 어떤 신자들이 이질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래로 드리는 미사의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충족 조건은

환호송을 모든 신자들이 함께 부르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자신이 가진 신앙을 기쁘고 활기차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성가 이야기] 우리 이런 미사를 만들어 봐요 (2)

 

김종헌(발다살)|신부, 한티순교성지 전담, 가톨릭음악원 원장

 

 

지난달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개정한 미사의 성가 중

우선적으로 노래해야 할

‘환호송(Acclamatio, acclamation)’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미사에 참여한 모든 백성이 기쁨으로 외치는 환호야말로

평일미사에서도 울려 퍼져야 할 중요한 성가입니다.

이 환호는 신앙고백이 되고, 즐거움의 감탄사도 되고,

기도내용을 시인하는 것도 되며,

인사에 대한 답례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는 여러 본당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성가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조금씩 고쳐나가면 좋겠습니다.

 

 

 

 

(1) 대영광송

 

대영광송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만들어 사용한 찬미가 중의 하나로,

6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모든 로마미사 안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찬미가는 기쁨의 찬미가이며

그 내용 역시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영광송은 원래 주교님만 노래 부를 수 있었고, 사제는 일 년에 단 한 번,

즉 파스카 성야 미사 때에만 노래 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사제들도 대영광송을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은

11세기부터입니다.

 

이 말은 곧 대영광송이라는 찬미가가 미사의 축제성과 장엄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징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림시기와 사순시기 때에는 특별한 축일을 제외하고는

대영광송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이와 반대로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를 제외한 모든 주일미사,

장엄미사, 축제,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장엄한 예식 때

대영광송을 노래함으로써 그날 축일의 특별한 장엄한 성격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볼 때 대영광송을 노래로 부르지 않고 외우게 될 경우,

이 대영광송은 이미 찬미가의 기능과 그날 축제의 성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그 정의조차 모호한 “창미사”라는 이름으로

주일의 교중 미사 때에만 미사 통상문(자비송, 대영광송,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고 마는데

이것은 편의주의로만 미사 거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영광송을 노래로 하면 미사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축하는 축일의 축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회가 지정한 날에는 대영광송을 노래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겠습니다.

 

 

 

 

(2) 화답송

 

화답송은 방금 들은 제1독서에 대해

하느님의 말씀인 ‘시편’으로 응답하는 노래입니다.

 

여러 방법으로 화답송을 노래할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바람직한 노래방법은

선창자가 후렴을 노래하고 나면 모든 신자들이 그 후렴을

다시 한 번 노래하고, 선창자가 시편구절을 노래하고 

신자들은 후렴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신자들로 하여금 제1독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고,

선창자는 그 내용을 신자들이 묵상하게끔 제시하는 것입니다.

라서 선창자가 부르는 시편 구절을

여럿이서 혹은 성가대가 4부로 노래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시편구절의 내용이 신자들에게 명확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음색이 조용하고 전달력이 좋은 선창자가

시편가사를 선명하게 신자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선창자는

오페라의 아리아 혹은 리드를 노래하듯이 드라마틱하게,

성악적으로 시편가사를 노래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선창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자랑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신자들에게 전달하여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도와주려는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화답송은 제1독서에 대한 묵상을 위해 교회에서 정해준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독서와는 전혀 무관한 노래들,

생활성가나 성가집에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찬미가들을 뽑아서

노래하는 본당들이 많은데 이것은 꼭 피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찬미가풍의 창작곡이라도 하느님의 말씀인

독서와 연관된 시편 화답송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답송을 노래하는 첫째 자리는 독서대임을 알아주시고,

제단 위의 독서대도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 주십시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난 지 5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어떤 본당에서는 두 개의 독서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제가 읽는 복음이 평신도가 읽는 독서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제들이 아직도 계시다는 겁니까?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3) ‘하느님의 어린양’때에 율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본당에서 특별히 청년미사와 어린이 미사 때에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할 때에

율동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이는 삼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사제들이 빵을 나누어 가지는 동안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반드시 노래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자들의 낭송으로 족합니다.

 

이렇게 전례음악적으로 과히 중요하지 않은 이 기도를 노래하면서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들이 제단 앞에 나와 율동을 이끌어주고

따라하도록 인도합니다.

 

율동이 필요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참석자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율동을 병행한다면,

이런 율동을 따라하게 되는 주일학교 학생들이나 청년들은

‘하느님의 어린양’ 부분을 굉장히 중요한 전례의 한 부분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사제들이 성체를 쪼개고 나누는 전례행위가

노래나 율동이 필요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꼭 율동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복음환호송’때나 ‘거룩하시도다’ 등

환호송을 노래할 때에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순간은 정말 기쁨의 시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여러 사제들이 공동으로 미사를 봉헌했기 때문에

빵을 나누는 시간도 길었습니다.

 

그래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지금 같이

세 번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불렀습니다.

 

마지막

‘하느님의 어린양’ 부분에서만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끝냈습니다.

 

러나 요즈음 각 본당에서는 주로 사제 한 분이

미사를 드리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린양…자비를 베푸소서’

반드시 두 번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자비를 베푸소서’와 ‘평화를 주소서’를 각기 한 번만 하면 됩니다.

 

 

 

 

(4) 영성체 노래

 

저는 한국교회의 미사전례음악의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영성체 노래라 생각합니다.

 

영성체 성가는 우리 마음에 오시는 그분과 나 자신과의 일치,

그리고 성체를 영하는 우리 서로간의 일치,

마지막으로 영성체 행렬을 위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가톨릭성가’집에 수록되어 있는

성체성가들의 거의 대부분은 성체를 찬미, 흠숭하는 가사를 가졌기 때문에

영성체 때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시간이나 성체강복 때에만 사용이 가능한 찬미가들입니다.

 

따라서 미사 때에 성가를 선곡하시는 분들은

성가집의 ‘성체’라는 분류를 믿고 ‘성체’에 포함된 아무 곡이나

영성체 때에 사용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가집에는

성체를 흠숭, 찬미하는 노래만 많이 수록되어 있고,

영성체 때에 사용할 노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성가 이야기] 우리 이런 미사를 만들어 봐요 (3)

 

김종헌(발다살)|신부, 한티순교성지 전담, 가톨릭음악원 원장

 

 

이번 달에도 우리 본당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생기가 넘치는 전례,
가슴에 와 닿는 전례를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사전례는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본당에 소속된 모든 신자들이 전례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참여하는
살아있는 예배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각 본당 공동체가 어떻게 주일미사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각 본당의 전례위원회를 활성화시키고 일주일에 한 번 평가회를 가집시다.

 

 

본당의 전례에 관계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지난 주일미사를 평가하고, 다가올 주일미사를 설계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왜냐하면 미사는 공동체의 예배행위이지,
어느 누구의 사적인 예배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제는 전례를 분담하는 다른 협조자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사제는 전례담당 수도자, 전례담당 봉사자들,
독서자, 해설자, 복사들, 안내봉사자, 그리고 성가대 지휘자가 함께 모여
미사를 준비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평가를 해야 합니다.

 

 

먼저 미사를 준비할 때 염두에 둘 것은 회중의 영적인 이익입니다.
참여하는 공동체의 신자들을 무시하고
미사 집전자나 준비하는 사람의 편의를 따라 준비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집전자 혼자의 자의에 따라 할 것이 아니라
미사전례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뜻을
최대한 받아들여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미사를 준비할까요?

 

 

(1) 그날 미사 혹은 축일의 주제를 선정합시다. :
먼저 제1독서와 복음을 살펴 그날 미사의 주제를 찾아내도록 합니다.
보편 지향기도를 준비하는 분이나 성가를 선곡하는 분들
역시 똑 같은 과정을 거친다면 사제의 강론이나 성가,
리고 신자들의 기도의 내용이
그날 미사나 축일의 주제를 선명하게 들어나게 하며,
신자들은  이 주제를 한 주간동안 기억하며 실천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더 적합한 주제를 찾기 위해서는 그날 미사 혹은 축일에 바치는
사제의 기도들(본기도, 영성체 후 기도 등)을 살펴보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2) 강론 준비 :
사제는 그날 미사의 주제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전례위원회에서
"나는 어떤 주제로 이번 주일에 강론을 합니다."라고 미리 알려주신다면
미사전례를 준비하는 봉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주제에 맞추어 성가를 고르고 신자들의 기도를 준비하면 됩니다.

 

 

(3) 성가 선정 :
무엇보다도 어떤 '환호송'들을 사용할 것인지 상의해 결정하고,
그날 미사나 축일의 주제를 살릴 수 있는
4개의 찬미가들(입당, 예물준비, 영성체, 파견성가)을 결정합니다.
아울러 화답송을 지정하고 선창자를 배정하는 동시에
침묵의 시간을 꼭 배정해 주도록 합니다.

 

 

미사 중에 사용할 음악은 사제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특히 시편, 환호송, 행렬노래 등의 선택은 성가대의 지휘자가
담당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본당의 사제나 수도자가 성가대에게 음악적인 지시를 할 때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큰 지식없이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르고,
어떤 곡은 부르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은 지휘자를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음악담당자에게 특별한 feedback을 주시려고 한다면,
사제나 수도자가 먼저 필요한 음악적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난 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올바른 지침을
음악담당자에게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가대 지휘자 또는 음악담당자는 주일미사에서 부르려하는 성가를
신자들이 잘 아는지, 좋아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미사 전에 신자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가르치도록 해야 합니다.
 
성가대 지휘자는 그 성가의 빠르기, 강약, 그리고 어떤 악기가 알맞은지를
검토하고 충고해 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미사 전례 중에 어떤 악기를 반주로 사용할 것인지,
또 악기의 독주를 허용할 것인지도 결정하고 완전한 침묵도
미리 생각하십시오.
 
음악의 선곡은 음악적인 요소만 살필 일이 아니라
그날 미사의 주제와의 연결을 반드시 생각해야 하고
가사의 내용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4) 보편 지향 기도의 작성 :
보편 지향기도의 시작 그리고 마감기도를 사제가 만들고,
지향기도를 완성합니다.
 
각 본당에서는 ‘매일미사’ 책에 있는 기도문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각 신앙공동체의 필요에 맞는 지향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합시다.
그래야 보편 지향 기도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신자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기도임을 느끼며 참여하게 됩니다.

 

 

(5) 전례 봉사자의 선택 :
독서자나 해설자의 선택도 전례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합시다.
그냥 성경을 읽는 독서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마음을 가지고 선포할 수 있도록 잘 준비시켜야 합니다.
 
많은 본당에서
독서자를 임의로 선택하거나 구역에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느님 말씀’의 선포는 무슨 책읽기 시합이나,
한 구역도 서운해 하지 않도록 돌아가며 읽는 것도 아닌 만큼
이 사람 저 사람 읽도록 하지 말고, 정말 잘 준비된 독서자를 양성하여
미사 때에 봉사하도록 양성해야 하겠습니다.

 

 

해설자는 미사 중에 즉흥적인 안내를 피하고,
반드시 해설할 원고를 사전에 전례위원회 또는 사제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받은 후에 미사 때에 사용하도록 합니다.
 
아울러 그날 거행하는 미사의 성격에 맞는 음색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혼인미사의 해설이 장례미사의 해설 같고,
장례미사의 해설이 혼인미사의 해설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해설자는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옳은 해설자의 태도라 생각합니다.

 

안내봉사자는
교회에 오는 신자들을 누구보다도 먼저 맞아들이는 수행을 합니다.
따라서 주일미사에 오는 신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하여
성당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줍시다.
 
주보를 건네주며 인사하고, 미사 중 질서를 유지시키며,
예물을 준비시키고 받은 헌금을 정리하며
영성체 행렬을 원활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안내봉사자의 역할입니다.

 

 

(6) 기타 선택 :
사제는 신앙공동체의 미사 때에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여러 기도문을 준비해서 사용한다면
신자의 가슴에 더욱 와 닿는 미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미사 시작 때에 하는 인사와 참회기도의 안내, 주님의 기도 안내,
평화의 인사 때의 안내, 마지막 축복과 파견의 대화 형식을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찬미 공동체의 수준, 크기, 관심사에 따라
알맞게 살아있는 기도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성체 하는 방식의 결정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습니다.
또 당일 미사에 향을 쓸 것인지, 행렬을 할 것인지
복사의 수는 몇 명으로 할 것인지도 이 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7) 미사 평가회(eval‎‍!uation committee) :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사제에게 비평하기를 꺼려 합니다.
예를 들면 미사 중에 하는 신부님들의 이상한 습성
(기도문 읽는 습관이나 전례행위)에 대해서 어느 누가 감히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신부님들은 혼자서 바치는 기도를 끝내면서 "…하솟서."라고
아주 강한 발음을 사용하거나, 너무 심하게 사투리를 사용한다든지,
'ㅡ'와 'ㅓ'의 구별이 전혀 안 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런 것들 역시 지적이 되고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그런 지적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제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사목하는 공동체의
모든 전례에 대한 미사 평가위원회에서의 지적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본당 공동체의 미사가 고상해지고 품위를 가지게 되며,
함께 하고 싶은 미사성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거행되었던

본당의 미사에 대한 평가가 이 시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전례와 각 봉사자들의 전례행위가 전례회의에서 정한 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는지 살펴보고 그 결과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사제 역시도 전례위원회에서 함께 정한 것을 따라야 합니다.
함께 정해 놓고도 미사 중에 임의로 바꾸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제가 독주할 경우 전례에 참례한 신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전례위원들의 참여의식을 깨트리게 만듭니다.

 

 

아마도 한국교회의 거의 대부분의 본당에서 전례위원회는
이름뿐인, 활성화되지 않은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실천하고 있는 본당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인"(전례헌장 10항) 전례를 위해서는
귀찮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반드시 실천될 성질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추신 : 지면상 이 글의 곳곳에 필요한 문헌을 제공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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