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삼우(三虞) 미사

Joannes 2015. 2. 22. 20:36

 

 

 

 

1. 삼우미사

 

삼우(三虞)란?

장례를 치르고 첫 번째로 지내는 제사를 초우(初虞)라 하고,

두 번째로 지내는 제사를 재우(再虞)라 하며,

세 번째로 지내는 제사를 삼우(三虞)라 하는데

삼우는 묘지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써 유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초우나 재우는 독실한 유교집안이 아니면

지내는 집안이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장례후 3일만에 묘지에 가서 지내는 제사를 삼우라고 함은

엄격한 의미에서 초우, 재우가 생략됐으니

삼우라고 불릴 수가 없다 하겠다.

 

그러므로 현재의 삼우는

장례후 3일만에 묘소에 간다는 변형된 의미로서의 삼우 일뿐이다.

그러면 가톨릭에서 지내는 삼우미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물론 삼우(三虞)란 어휘 자체가

위에서 설명한 유교 풍습에서 나온 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실제는 그와 다르다 하겠다.

왜냐하면 가톨릭 신자가 죽으면 즉시 사망미사를 드리고,

장례(발인_發靷)날 장례미사를 드린다.

(성직자나 그 부모들이 죽으면 사망부터 장례미사 전까지

많은 미사를 드리지만 이도 사망미사와 장례미사와는 구분된다.)

 

그리고 장례후 3일만에 삼우미사를 드림으로

세 번째로 드리는 미사(제사)가 분명하니

유교문화의 전래와는 장례후 3일만에 묘소에 가는 것과

삼우라는 용어만이 같을 뿐

미사(제사)를 드리는 시기가 다르다.

 

(유교는 장례 후 부터 계산하지만

가톨릭은 사망 후 부터 계산된다.)

 

또한 묘소를 찾는 것은 비신자들은 묘소를 돌보고

비록 땅에 묻혔지만 장례후 정적(精的=영적(靈的)으로

상봉이라는 의미일 뿐이지만,

가톨릭신자는 그 외에 예수님이 묻히신지 3일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 등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성경적 의미와

예수님이 묻히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음을 기억하여

부활을 간구하는 신학적 의미로

가톨릭적 제례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가 수용해 왔으며

지금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으니

시비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2. 49제 (미사 또는 기도)

 

49제(薺)에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를 한다는 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된 것이다.

 

49제는 불교의 윤회설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사람이 죽은지 49일이 되는 날이 중음(中陰)이 차는 날로서

그동안

일곱 번의 생사를 거쳐 각 과보(果報)를 감지(感知)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 가서 태어나는 날이라 하여

49제를 지내는 것이다.

 

즉 삼계육도에 가서 누리는 후생안락(厚生安樂)을 위하여

독경공양(讀經供養)으로 명복을 비는 것이다.

그러므로

49제에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를 함은

회설을 수용하는 결과가 되니 잘못이라 생각한다.

 

 

 

3. 탈상

 

탈상(脫喪)이란

해상(解喪)이라고도 하여 어버이의 3년상을 마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유교에서의 효를 인간의 근본으로 삼은 데서 나온 것이다.

 

즉 부모가 돌아가심은 자식의 불효에 기인한다 하여

불효한 잘못에 대한 속죄와 부모를 여윈 슬픔을 차을 수 없어

3년이란 긴 세월을 생업(生業)도 전폐하고 죄인으로 지내고

3년째에 대상(大詳)을 지내고 상복을 벗어

정상생활로 돌아와야 하는 엄격한 제도이다.

 

이러한 폐습을 수정하여 국민의례준칙은

1백일 탈상을 권장해 왔다.

불교에서는 49제로써 탈상한다.

현재는 3년 탈상 역시 제대로 지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다만 형식만 갖추는 집안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언제 탈상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맞을까?

 

두가지를 들 수 있으니

그 하나는 아론이 죽은 뒤(민수기 20, 29)

모세가 죽은 뒤(신명기 34, 8) 30일동안 곡하는 기간을 마쳤다는

구약시대의 지도자들의 성경 적 상기(喪期)와,

다른 하나는 오순절을 들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유다인들이 출애급의

파스카 사건의 종결을 오순절에 기념했던 것과 같다.

히브리말에서 오순절이란

「쉰번째」날로써 「종결」, 「끝」이라는 뜻을 지닌다.

신약의 오순절을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의 새로운 파스카의 완성이며

재창조의 시작이기에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고

한국 천주교 상례 토착화의 현실과 전망」주제하의

세미나에서 밝힌 바 있다.

 

전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풍습일 뿐이니

이를 선택함은 신학적 의미가 없고,

오순절을 택함이 신학적 의미가 있다 하겠다.

 

 

 

4. 장례절차

 

장례절차(상복, 염습, 입관, 행상, 도묘, 화관 등)

오랜 풍습으로 우리 민족 문화로 정착되어 왔으며,

비신자들의 장례절차 속에는

유.불식뿐 아니라 무속적 요소도 다분히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의 장례절차는

무속적 요소

(출관때 바가지를 깬다든가 노제, 산신제를 지내는 등)

완전히 제거되었고, 형식(염습 등)에서는 유.불식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반 그리스도교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더욱이 우리 교회는 오래전부터 임종에서 매장까지

각 과정마다 어떻게 하라는 그리스도교적 절차를

「성교예규」에 상세히 설명 제시하고 있다.

 

혹 절차나 과정에 미신적 요소나,

반그리스도교적 요소가 있다면 그 부분을 제거하거나

그리스도교적으로 수정 보완하면 될 것이다.

 

 

 

 

5. 제사문제

 

제사문제는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앞에서 제시한 가톨릭신문에서도 『연미사를 바치면서도

전통적 제사는 따로 지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제사문제는

한국교회 초기(1791년 신해박해)

윤지충(바오로), 권상연(야고보)부모의 신주(神主)

모시지 않았거나 불살랐다하여 처형된

뼈아픈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 후 제사문제는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심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의 발로임을

교황청이 이해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연미사를 드리고 따로 집에서 제사를 모심은

미사의 의미보다 제사를 중시해서라기보다는

‘선조를 기억하는 예식’에서도 미사를 드리고

제사를 지내도록 허용되어 있으니,

우리 민족의 효심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지

탓할일은 아니라고 본다.

 

소위 서구식으로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도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을 외면한 그릇된 것이지

그리스도교적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문제는

반 그리스도교적이란 시각에서 볼 것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공경의 표현으로 보고,

다만 사목적으로 미사를 드리고도 따로이 제사를

꼭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교육함은 필요하겠다.

 

 

 

6. 죽은이를 위한 기도문제

 

위령기도는 모두 같이 바치고,

여러 기도문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끝에 바친다.

 

우리가 ‘죽은이를 위해서’ 기도하기보다는

죽은 이들에게서도 효력을 발하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신뢰로써

차라리 ‘죽은이들에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죽은이를 위한 기도는

특히 장례의식과 조상(弔喪)기간에 적합할 것이다.

 

이에 반해서 죽은 이와 함께 바치는 기도,

죽은 이에게 바치는 기도,

즉 하느님과 함께 이미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고 있는

그들과 함께 살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가 그들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우리가 죽은이에게 바치는 기도가

우리의 일상 생활속에서

훨씬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라고 제시한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외국에는 연도가 없다고 한다.

죽은 이를 위해서 「묵주의 기도」를 바친다고 한다.

 

기도중에 가장 완전한 주님의 기도

성모님께 간구하는 성모송,

그리고 구원경으로 꾸며진 「묵주의 기도」는

다른 모든 기도가 함축된 기도라고 본다.

 

이 묵주의 기도가 연도문에 미치지 못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장례후에 죽은 이를 위한 기도문이

상황(시기)에 맞게 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례이후는 묵주의 기도나 호칭기도

(예수 성심 호칭기도,

성모 호칭기도,

성 요셉 호칭기도,

103위 한국 성인 호칭기도,

모든 성인들의 호칭기도중 하나)

를 바침이 좋을 것으로 본다.

 

혹자는 기도의 대상자가 연옥에 있다면

그 기도가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위령기도를 바쳤을때 그가 이미 천당에 있다면

그 기도는

다른 연옥영혼에게 돌아간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그렇다면 위령기도가 아닌 위와 같은 기도를 바쳤을 때

그가 연옥에 있다면 기도문에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는

통공(천상, 지상, 연옥)으로 연옥 영혼까지도

우리 안에 포함되니 문제가 되지 않고,

그가 천국에 있다면 그도 지상의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간구할 것이니 더 효과적이라 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삼우제(三虞祭)와 사십구재(四十九齋)

 

교회 정신에 따라

영혼의 구원 비는 민족예식 삼우미사,

유교 삼우제 토착화해 수용한 연미사 사십구재,

불교 ‘윤회 관’ 바탕으로 한 제례양식

발행일 : 2012-02-12 [제2782호, 8면]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전통제사를 존중하여

효(孝)와 가족 공동체의 유대 차원에서

명절이나 기일에 가풍에 따라

전통제사를 드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제사나 명절 차례에 ‘연도’라는

우리민족 가락의 위령시편을 봉헌한다.

연도 이외에도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유교의 삼우제(三虞祭)를 토착화해 수용했다.

 

한국 천주교회 「상장예식」에는 삼우제(三虞祭)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예식으로 받아들여

토착화한 전례로 실천하도록 하는 예식이 제시돼 있다.

 

「상장예식」 제5장 128항은 제목을 우제(虞祭)라 하여

삼우제(三虞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시신을 묘소에 두고 돌아온 다음

영혼을 달래어 안정시키려고, 초우, 재우, 삼우를 지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상을 떠난 이보다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이런 심정은 마찬가지여서

사별의 슬픔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세상을 떠난 이를 생각하여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사별의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북돋우는 때이다.”

 

성균관의 한 유학자는 “삼우제는 유교에서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유교에서보다

한국 천주교회의 전례에서 토착화된 예식으로서

더 잘 드러나게 실천되고 있으며 그 토착화의 열매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삼우 날 유가족들이 묘소를 참배하고

예를 드리는 제사를 드렸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이 삼우 날 미사를 드리고 묘소에 가서

상장  예식서의 삼우예식을 바친다.

 

초우와 재우의 예식은 신앙고백과 분향이 있는

‘말씀전례’ 형태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삼우 예식에는 신경이 없다.

본당에서 ‘삼우미사’라고 해서

연미사를 봉헌하는 유가족이 있다.

그러나 삼우미사는 어떤 특별한 미사의 형태가 아니라

그날 미사에 죽은 자들을 위한 연미사 지향을 올린 것이다.

 

「상장예식」은

우제(虞祭)와 관련해 삼우제인 초우, 재우, 삼우에

연미사를 봉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삼우미사란 명칭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생겨난 전례용어이다.

그러나 삼우미사는 그날 미사에

죽은 이를 위한 지향으로 미사예물을 봉헌하고

유가족이 이 미사에 참례하는 형태일 뿐

연미사의 다른 형태가 아니다

(참조: 미사 총 지침 380~381항).

 

유럽의 가톨릭교회에서도

죽은 지 3일, 5일, 7일에 미사를 드리는 관습이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있고

특히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3일을 기념하는

3일 미사가 성행했다.

 

삼우(三虞)미사는 사목 적 목적이 강하다.

초우, 재우, 삼우 기간에 유가족 중 냉담교우들은

교회의 부활신앙으로 돌아온다.

또 고해성사로 영혼을 정화하고

가족 공동체의 유대를 다지게 된다.

 

삼우제(三虞祭)는 천주교회에서

민족 전통 장례풍습 정신인

()의 표양으로 받아들여져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 후 3일간

무덤에 묻히심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유교의 삼우제와 삼우미사가

토착화된 전례로 수용된 것과 달리

불교의 사십구재(四十九齋)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가끔 사십구재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며 49대의

연미사 예물을 사무실에 접수하는 신자들이 있다.

이는 잘못된 관습이다.

 

사십구재(四十九齋)

윤회하기 위한 판결을 기다리는 죽은 영혼이

7명의 각 재판관에게

7분야의 재판을 차례로 받는 형벌로,

‘심판의 기간’을 의미한다.

마지막 49일째 되는 날이

최종 심판관인 염라대왕의 심판이 있는 날이며,

그 심판으로 윤회되는 날

정성을 다하여 판결을 가볍게 한다는

불교의 윤회관을 바탕으로 하는 제례양식이다.

 

사십구재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불교의 제례문화가 해석 없이

천주교 연미사에 그대로 수용된

문화의 역전이(易轉移)현상이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연미사는 언제까지 드려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탈상(脫喪)과 관련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어떠한 규정도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 가정에서 성경과 교회의 정신을 반영하여

스스로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삼우미사를 통해 예수님이 묻히신 3일간

연미사를 봉헌하며 연도할 수 있다.

49일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 이후

성령 강림을 상징하는 50일 혹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7일간 창조하고 휴식하신 7일간을

탈상기간으로 정해도 좋다.

 

필자의 가정은 일곱 번의 안식년 다음 해인

50년의 ‘50’이라는 숫자에

‘완전한 회복’의 의미와 ‘희년(禧年)’의 의미를 담아

50일 미사를 봉헌했다

(참조: 레위 25,18-19 탈출 21,2-6).

그 밖에 100일이나 1년을 드리는 경우도 있다.

 

현대인의 생활 안에서 이러한 탈상의 기간마저

교회가 하나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탈상기간 외에 연미사를 봉헌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모든 연미사의 정신은

죽은 한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통공을 통해

모든 연옥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구한다는 것이다.

연미사 기간을 궁금해 하기보다는

성경과 교회의 전례정신을 반영해 선택하는 자유로움이

천주교회 상장예식에 뿌리 내리길 바란다.

 

49?

아귀(餓鬼)·지옥도(地獄道) 등

여섯 세계를 윤회하고 있으므로 죽은 가족이

이 중 이른바 삼악도(三惡道 ; 지옥도·아귀도·축생도)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비는 기도 행위가

49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49재를 드리는 것은 미신행위가 된다.

미신행위로서의 49재를 지낼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50일 만에 성령을 보내주셨으니

장례를 모신 후 50일 만에 제사를 지내는 관습을 만들어

가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네 관습으로

초우(初虞 : 장례 치른 날 묘지에서 돌아와)

재우(再虞 : 초우 지낸 다음 날),

삼우(三虞 : 장례 후 사흘 째 되는 날),

소기(小朞)또는 소상(小祥 : 죽은 지 한 돌 되는 날)

대기(大朞)또는 대상(大祥: 죽은 지 두 돌 되는 날)

그리고

면례(緬禮 : 세월이 흐른 후 시신을 납골당 등으로 옮길 때)

등을 지내는 관습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죽으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으니

3우를 그런 의미로 지내자는 것이다.

 

결론을 다시 말하면

장례를 모시고 3일째 되는 날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삼우 미사를 지내고,

삼우미사 후 50일째 되는 날은

성령 강림을 생각하며

50일 미사를 봉헌하면 좋겠고,

또한 100일 날 미사는

전통문화 안에서 관습으로 정착된

특별한 의미의 날이라는 설명을 넣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