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그 중심인 미사
서론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루카 22,19-20)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히브 9,12)
오늘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미사는 이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다.
이 사실을 드러내고자 십자가를 제단에 모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성당에 대형 십자가가 모셔져 있다.
참으로 뜻 깊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신 모습은
그 자체로만 보면 아름다운 것일 수는 없다.
오히려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광경이다.
그러나 수천 년의 역사를 지내 오는 동안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익숙하게 되면서,
더 중요한 의미를 바라보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전례와 신앙생활 전반에 부활의 빛과 기쁨,
그리고 그 힘이 충분히 스며들지도 발산되지도 못하였다.
그렇게 된 데에는 신자들에게 십자가를 거쳐서 부활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핵심 신비를 전체적으로 충분히 각인시켜 주지 못한
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십지가 자체가 너무나 크게 부각되고
그만큼 부활의 빛이 가리어지는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미사와 신앙생활의 전반적 분위기가
필요 없이 무거워지고 활기와 확신이 부족하게 되기도 했던 것이다.
본래 실패와 치욕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를
그리스도교가 오히려 높이 추켜세우게 된 데에는,
온 인류의 의식을 거대한 바위나 태산보다도 더 무겁게 내리누르던 죽음,
그리고 그 원인인 죄의 문제를 예수님의 십자가가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신에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슬픔과 어둠의 그림자가 아니라,
부활의 찬란한 빛을 발하는 영광의 광원이 되었다.
미사 전례는 바로 이러한 의미의 십자가 신비,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힘으로 전달되는 그 부활,
새로운 삶의 기쁨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려 내는 사건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사 전례 전체 안에서
이러한 본래의 의미가 충분히 살아나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이 도입한 새로움 가운데 하나는
“주례자”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례자석을 눈에 띄는 위치에 두도록 하였다.
이것은 물론 전례 집전자가 그리스도를 체현
(사상이나 관념 따위의 정신적인 것을
구체적인 형태나 행동으로 표현하거나 실현함)
하고 있다는 신학적 바탕에서 이루어진 배려이다.
따라서 진례 집전자는
그 몸가짐 전체로써 회중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고,
회중이 성령께서 살아 움직이고 계심을 느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몸가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 앞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합장" 의 자세이다.
이 자세는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종교적 자세이며,
그 자체가 본인에게나 함께 있는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을 향해 몸을 모으고
성령의 움직임에 가장 예민하게 감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몸가짐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합장이 한층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주례자는 물론이고 공동 집전 미사 때에는
모든 사제가 꼭 반듯한 합장의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 하느님 백성 전체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위를 향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회중도 합장을 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함께 이루는 경건한 분위기 자체가 상승 작용을 하여
모두 하느님 성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례자와 회중이 교대로 하는 “기도”에서도
참석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목소리' 를 모으고,
보통 때보다 한 단계 더 높여 충분히 큰 소리로 말함으로써,
부활한 삶의 기쁨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목수리가 너무 낮거나 기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르면
전례의 본래 취지가 살아날 수 없게 된다.
“성경 봉독”에서도, 보통보다 한 단계 높고
배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로 새 삶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한다.
선포는 선포이다.
그냥 얌전히 읽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기쁜 소식,
새 삶의 복음을 큰 소리로 알리는 것이다.
성경을 봉독하는 사람은 그만큼 여러 번 읽어서
충분히 준비한 다음 천천히, 의미를 정확히 살려서
전달할 수 있도록 잘 훈련을 받아야 한다.
본래는 독서직을 받은 사람만
전례 중에 성경을 봉독할 수 있었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평신도에게 개방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한 훈련까지 면제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어문 교육이 주로 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말하기 훈련을 대단히 소홀히 한 점을 감안하면,
성경 봉독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점을 명심하여 적임자를 선택하고,
선택한 사람을 잘 준비시켜야 한다.
“성가”도 공의회 방침에 따라,
모든 신자가 함께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부를 수 있는 곡을 선택하며,
한번 선택한 노래는 자주 바꾸지 말고,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불러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물질생활이 많이 풍요해진 오늘날.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나
사람들이 영적 갈증을 더욱더 느끼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전례를 통하여 전달되는 부활의 기쁨을
한껏 살려 낼 수 있다면,
미사야말로 우리와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목마름을 깨끗이 해소해 주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줄
“야곱의 우물"(요한 4장)이 될 것이다.
우리가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 이유. 3가지
첫째, 미사는 잔치 형식을 통하여
주님의 집자가 제사를 재현하는 것이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최후 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사도들에게 당신을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둘째, 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구원 활동을 환수하시고자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시고,
‘당신 친히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시며’
집전자 안에 현존하신다.
또한 특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시는 것이다.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끝으로,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하신다.
셋째, 미사 전례는 교회 공동체 전례에서 가장 중심이 된다.
미사는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둘은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하나의 예배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분리하거나 우위를 가릴 수 없다.
사실, 미사 안에 하느님 말씀의 식탁과
그리스도 몸의 식탁이 차려져 신자들은
거기에서 가르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양육된다.
[시작 예식]
시작 예식은 말씀 전례에 앞서 거행하는
입당에서부터 본기도에 이르는 예식을 포함한다.
입당 행렬과 입당송(입당성가)
회중이 모인 다음,
사제가 부제와 봉사자들과 함께 입당할 때 입당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의 목적은
미사 전례를 시작하고 함께 모인 이들의 일치를 강화하며,
전례 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그들의 마음을 이끌고,
그들이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입당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미사 전례의 시작 성가는 끝까지,
아니면 적어도 2-3절까지 충분히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우들은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구원의 신비를 거행할 준비를 갖춘다.
참회
주례 사제는 참회하도록 권고한 다음
교우들의 성찰을 돕기 위하여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성령 묵상 회 파견미사처럼, 그 가능성은 열려 있는 듯,
혹 약간의 참회를 위한 기도를 첨가하여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도 있을 듯)
자비 송
자비 송은 주례자와 회중 또는 성가대와 회중,
선창과 회중이 한 부분씩 맡아 교대로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노래로 할 때라도 늘 성가대와 회중이 교대로 하는 것보다는
주례자와 회중이 교대로 하는 것이 좋다.
(간혹, 신자들에게 특별하게 와 닿을 수 있겠다.)
대영광송
대영광송은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아버지와 어린양께
찬양과 간청을 드리는 매우 오래된 고귀한 찬미가이다.
이 찬미가를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대영광송은 사제 또는 필요에 따라 선창이나 성가대가 시작하고,
모두 함께 노래하거나 회중과 성가대가 교대로 노래하거나
성가대 홀로 노래한다.
축제의 기쁨이나 장엄 성을 드러내려면
성가대의 아름답고 웅장한 합창도 필요하지만,
전례의 공동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회중이 함께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기도 (Collecta.
회중들의 마음에 있는 청원까지 모아서 기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제는 손을 모으고 “기도합시다". 하고 잠시 침묵한다.
(Collecta의 의미를 담는다.)
이때 사제는 회중에게 기도하자고 초대하는 것이므로
회중은 사제와 함께 잠시 침묵하면서,
자신들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자신들의 간청을 드린다.
시작 예식 때에 다른 예식을 거행하였으면,
곧바로 대영광송이나 본기도로 시작한다.
(즉, 자비 송에 관해서는 많은 부분,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듯 보여진다.)
[말씀 전례]
성경 봉독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성경 봉독은
언제나 독서 대에서 한다.”
따라서 제대나 해설 대에서 하지 않도록 한다.
독서 대는 말씀의 식탁으로서
성당 안에서 제대와 함께 전례 적으로 가장 중심적인 자리이다.
“성경 봉독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구속과 구원의 신비를 열어 주시며,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신다.”(총 지침, 55항)
“교회 안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 현존하시며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봉독하여야 하며,
모든 이는 독서를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을
공경의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총 지침, 29항)
회중이 모두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옳지 않다.
(더불어 스크린에 독서의 내용을 띄우는 것도 옳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미사의 성경 봉독 때에 성경의 내용을 줄이거나
성경이 아닌 독서로 대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총 지침, 57항)
(수도회에서 창설자의 어록을 읽는 경우가 있었음)
사제는 말씀 전례를 거행하면서,
교우들이 묵상을 잘 하도록 침묵의 시간을 갖게 하고,
결코 서두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말씀을 봉독하러 독서 대에 올라가고 내려올 때에 서두르지 않으며,
말씀을 봉독할 때에도 다른 교우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똑똑히 그리고 천천히 하게 한다. (목소리 톤도 중요)
독서 후 침묵
말씀을 봉독한 다음 잠시 침묵한다.
첫째 독서와 둘째 독서 그리고 강론 다음에도 잠시 침묵한다.
이 순간은 교우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기도로 응답할 준비를 갖추는 시간이다.
화답송
화답송은 말씀 전례의 한 부분이며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하는 것으로서
전례 적으로나 사목 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 노래를 통하여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로 화답한다.(총 지침 61항)
(전례를 준비함에 있어, 가능성이 열려 있다.)
복음 환호 송
복음 바로 앞의 독서가 끝나면
“알렐루야”나 다른 노래(사순시기)를 부른다.
교우들은 복음 환호 송을 하며 복음 선포에서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그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복음 봉독
복음은 반드시 독서 대에서 선포한다.
사제들은 제대에서 복음을 선포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복음 선포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회중에게 인사할 때에는 다른 때와 달리 손을 모으고 한다.
(총 지침 175항. 사제도 같이 듣는다는 의미이다.)
장엄하게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선포하는 복음 전체를 노래로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복음 전 인사말과 끝맺는 말과 회중의 환호는 노래로 하여
하느님 말씀의 고귀함과 품위를 강조한다.(총 지침 17항)
신경
주일과 대축일에 신경을 외운다.
이때에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신에 “사도 신경”을 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신경은 회중이 교대로 또는 함께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보편 지향 기도
“하느님 백성은 보편 지향 기도를 통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 때 받은 자신의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며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한다.
(총 지침 69항. 보편지향 기도를 통해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사도직을 실행하는 것이다.)
성찬 전례
예물 준비와 성가에 대하여 고민
지금 당신은 어떻게 봉헌 예물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감사송과 거룩하시도다
사제는 감사송을 통하여
거룩한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여러 구원의 업적에 대하여 감사드린다.
특별한 시기나 축제일에는 그날의 특별한 신비를 드러내 감사드린다.
(감사송을 귀담아 들어보면, 그 의미가 기가 막힘을 알 수 있다.)
영성체 예식
평화의 인사
사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
기도를 바치고 나서 두 손을 벌렸다가 모으면서 회중을 향하여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고 말하면
회중은 “또한 사제와 함께” 하고 응답한다.
그런 다음 사제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하고 말하면 회중은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며
서로 평화와 사랑의 인사를 나눈다.
이때 사제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를 바라는
몇 사람과 평화의 인사를 할 수 있지만
거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제단에 머물면서 평화의 인사를 한다.
(총 지침 154항)
영성체 후 침묵 기도
영성체가 끝나면 사제와 교우들은 잠시 침묵하면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린다 (총 지침 88.164항).
위대한 침묵…….미사 중에도 자주 해야 한다. (영성체 후에)
침묵을 하면 마치 성가대가 무능한 것으로 오해할까봐
준비 덜 된 합창으로 특송을 부른다거나
부족한 오르간 능력에 트레물러 넣고 자극적으로 성가 연주하지 말고…….
교우 들이 묵상을 망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침묵은 시간의 정지가 아니라
하느님과 내가 직접 통교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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