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조선왕조

Joannes 2012. 11. 3. 17:50

 

 

 

 

1대 태조 (이성계)

왕위 1392-1398(57-63세)

사망 73세(1408) 중풍 / 동구릉의 건원릉

자녀 13명

함경도 여진족 동네에서 대장하다가
원나라 대신 고려로 들어와 고려를 접수했음


조선을 세웠으나 젊은 아들들의 등쌀에 임금 물려주고 쫓겨 남



2대 정종 (이방과)

왕위 1399-1400(42-43세)

사망 62세(1419) 노환 / 후릉(유일하게 북한지역 판문점 북쪽)

자녀 23명

동생에게 떠밀려 임금 자리에 올랐으나
1년 만에 도로 주고 팔자 편한 야인이 됨


아기만 부지런히 만들었음



3대 태종 (이방원)

왕위 1401-1418(34-51세)


사망 55세(1422) 폐렴 / 헌릉

 
자녀 29명 / 16남 13녀

조선의 모든 체제를 실질적으로 만든 임금.

그 와중에 가족 간의 분쟁이 있어서 점수를 많이 잃은 임금.

자진해서 죽기 전에 임금자리 물려 준 최초의 임금.



4대 세종 (이도)

왕위 1418-1450(21-53세)

승하 53세 당뇨 등 비만질환 다수 / 영릉(최초 부부합장)

자녀 22명 / 18남 4녀 (득남 최다 기록)

형제간 왕권다툼이 싫은 두 형님들 덕분에 임금이 된 사나이

소헌왕후 심씨는 정실부인으로
혼자 8남 2녀 10명의 자녀를 낳아 신기록 수립


말년에 훈민정음을 만들어
각종 책자 번역본 만드느라 바쁘게 지내다가 승하




5대 문종 (이향)

왕위 1450-1452(36-38세)

승하 38세 등창 / 현릉

자녀 3명

장남 출신으로 처음으로 임금된 사나이

세자 시절 다른 여자들과 너무 놀아
외로운 세자빈이 동성연애하다가 쫓겨 났고...




6대 단종 (이홍희)

왕위 1452-1455(11-14세)

사망 16세(1457) 영월 청령포에서 사약 / 장릉

자녀 없음

어린 왕이 중요문서 결재 시
대신들이 노란 점을 찍어주면 빨간 색으로 결재했음


화가 난 종친 어른 양녕대군이
수양대군에게 맡기는 게 더 낫겠다고 하였다.


수양에게 양위 후 "노산군“으로 되었다가 250년 뒤
숙종이 ”단종“으로 복위시켜 줌




7대 세조 (이유)

왕위 1455-1468(38-51세)

승하 51세 문둥병과 불면증 / 광릉

자녀 5명

세종이 못다 한 고서의 한글 번역 작업 거의 마무리함

많은 대신들과 조카를 죽인 사실을 나중에 자책하며
전국 사찰을 돌았다




8대 예종 (이황)

왕위 1468-1469(18-19세)

승하 19세, 안순왕후 한씨와 자다가 복상사 / 창릉

자녀 3명

주요 업적이라고는
유자광에 꾀여 남이장군 죽인 일 정도밖에 없다.


승하 시 처음에는 발에 종기가 나서 급사했다고 발표되었다.



9대 성종 (이혈)

왕위 1469-1494(12-37세)

승하 37세, 등창과 폐병 / 선릉

자녀 28명 (비공식 기록은 100명이 넘는다고 함)

대왕대비와 인수대비가 정치를 다해 주어
임금이 할 일이 없어 여자만 좋아했다.


궁궐 담을 넘어서
시내 기생들과 밤을 새고 들어온 적이 많았다


궁중 여자들 분쟁에
왕비 윤씨를 폐비시키고 사약을 내린 일이 있다.




10대 연산군 (이용)

왕위 1494-1506(18-30세)

사망 30세, 강화도 유배 중 괴질 / 서울 방학동에 산소
(아직 민간인 신분이라 릉이 아님)


자녀 5명

처음에는 무난한 정치를 했으나 신하들끼리 싸우다가
누군가가 폐비 윤씨 사건을 얘기했다


그 후 불효 자식은 될 수 없다고 하여 미친 듯이
어머니 복수를 하고 정치에 신물이 났다.


조용히 쫓겨났고 강화 교동도에 유배 가서
그 해를 못 넘기고 사망하였다.




11대 중종 (이역)

왕위 1506-1544(18-56세)

승하 56세, 거머리로 등창 치료 중 울화병 / 정릉

자녀 20명

처음에는 반정공신들에게, 나중에는 외갓집 식구들에게 휘둘렸다

젊은 조광조를 잠깐 기용하였으나 너무 급진파라 다시 쫓아냈다.



12대 인종 (이호)

왕위 1544-1545(29-30세)

승하 30세, 이질 / 효릉

자녀 없음

계모 문정왕후가 자기 아들 때문에 임금을 독살시켰다는 설도 있음




13대 명종 (이환)

왕위 1545-1567(11-33세)

승하 33세, 무수리 장씨와 지나친 방사 / 강릉

자녀 1명

여자에게 너무 빠져서 엄마 문정왕후에게회초리도 맞았으나
별로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14대 선조 (이균)

왕위 1597-1608(15-56세)

승하 56세, 중풍 / 목릉

자녀 25명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가기도 바쁜데 아기들만 많이 만들었다.

후궁 소생 차남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으나
나중에 정실부인으로 온 왕비가 득남했다.


세자를 바꿀까 말까 갈등하던 중에 승하하였다.



15대 광해군 (이혼)

왕위 1608-1623(33-48세)

사망 66세(1641), 제주도에서 노환으로 / 제주도 산소
(아직 민간인 신분이라 릉이 아님)


자녀 2명

세자 시절 임진왜란 임시정부 수반으로 위기를 잘 넘겼고

임금 시절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외교 정책을 잘 하였으나

이복 동생 영창대군 죽인 사실이 흉이 되어 결국에는 쫓겨 남

제주도에서 마음을 비우고 잘 지내다가 노환으로 사망함



16대 인조 (왕위에 즉위하기 이천윤 즉위하고 이종)
 
왕위 1623-1649(28-54세)

승하 54세, 홧병 / 장릉

자녀 8명

반정세력의 논리에 휘말려 후금을 무시하다가 두 번의 호란을 당함

두 번째는 여진족을 만주족으로 개명하고
황제의 나라로 발전한 청나라의 병자호란이다,


말로만 국방을 하다가
결국에는 임금이 청나라 황제에게 큰절하는 치욕을 당한다.


심양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천주교 신자가 되어 돌아오자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




17대 효종 (이호)

왕위 1649-1659(30-40세)

승하 40세, 어의의 의료사고로 출혈사 / 영릉

자녀 8명

형님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잡혀 갔다가 온 왕자

임금 된 후로 북벌론을 엄청 강조한 임금

수전증 걸린 어의의 실수로
의료사고가 발생하여 과다출혈로 승하한 임금




18대 현종 (이연)

왕위 1659-1674(18-33세)

승하 33세, 학질과 과로 / 숭릉

자녀 4명(1남 3녀)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중국 심양에 인질로 있을 때 태어 난 사나이

요즈음 모 드라마에서
효종의 공주가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제일 큰 공주는
14세 때 결혼을 해 버렸기 때문에 드라마 이야기는 거짓말임




19대 숙종 (이순)

왕위 1674-1720(13-59세)

승하 59세, 등창과 스트레스 / 명릉

자녀 8명

인현왕후, 장희빈 사이에서 고생하는 와중에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위 조치




20대 경종 (이윤)

왕위 1720-1724(32-36세)

승하 36세, 게장과 상극인 생감을 같이 먹다가 급사 / 의릉

자녀 없음

숙종과 장희빈 아들로 끊임 없는 당파싸움 와중에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음




21대 영조 (이금)

왕위 1724-1776(30-82세)

승하 82세, 치매 / 원릉

자녀 14명

경종을 독살하고 무수리 자식이 임금되었다는 말을 제일 싫어하는데
세자가 어디서 듣고 옴


신하들 당쟁과 임금의 치매가 세자를 죽게 함.
뒤늦게 슬퍼하며 “사도세자”라 작명함


조선 임금 중 제일 장수한 임금임




22대 정조 (이산)

왕위 1776-1800(24-48세)

승하 48세, 등창 / 건릉

자녀 4명

안경을 쓴 최초의 임금. 아버지 사도세자를 “장조”라 추존함.

해마다 아버님 제사 지낸다며 수원까지 행차함

아버지 복수를 해야 하나 갈등하던 중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음

 

23대 순조 (이공)


왕위 1800-1834(10-44세)

승하 44, 매독 3기 / 인릉

자녀 6명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여 안동김씨 시대가 시작됨.
매독 옮긴 사람은 또 누군지?




24대 헌종 (이환)

왕위 1834-1849(7-22세)

승하 22세, 폐결핵 / 경릉

자녀 1명

술과 여자로만 세월을 보내다가 요절함



25대 철종 (이변)

왕위 1849-1863(18-32세)
 
승하 32세, 폐결핵 / 예릉

자녀 11명

강화도에서 끌려와 임금이 된 사나이.
술과 여자가 지나치더니 또 폐결핵인가..


 


26대 고종 (이재황)


왕위 1863-1897(11-45세), 황위1897-1907(45-55세)

사망 67세(1919), 일본에 의한 독살 / 홍릉

자녀 14명

아버지 대원군, 왕비 민씨,
일본인 등이 나서서 정치를 대신 다해 주었음.


왕비 칼맞아 죽고 일본이 조선을 왕국에서 독립제국으로 승격시키자
졸지에 황제가 됨


선대 25명의 왕을 모두 황제로 승격시켜 일제히
○조, ○종 등의 명칭으로 다 바꿈


황제의 아들은 무슨 대군이란 말 대신
무슨 왕으로 불리운다. (의친왕, 영친왕...)


여기저기 독립군 특사를 보내며 뒷북을 치다가
황제에서 쫓겨나서 12년 후 독살 당함


고종 장례식을 보려고
서울에 모인 사람들이 만세 부른 것이 3 1 만세운동이지요




27대 순종 (이척)

황위 1907-1910(34-37세)

사망 53세(1926), 라디오 청취 중 심장마비 / 유릉

자녀 없음

쫓겨난 고종 황제 대신 황제 자리에 잠깐 앉았지만
대부분 업무는 일본에서 다 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병합되자
순종 황제도 무슨 왕인가로 격하된다.


이 때 데라우치 조선 통감이
조선 총독으로 승격되어 한반도를 통치한다.


순종 장례식 때 사람들이 또 만세를 외쳤는데
이를 6 10 만세사건이라 한다.

(제고 동문홈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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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부개고등학교장/전 제고 교사-교감)